[화담일보=박정현기자] K팝 앨범 시장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스트리밍 중심으로 음악 소비 방식이 변화하면서 실물 음반의 활용도가 낮아졌지만, 앨범에 일상용품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상품이 등장하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키링과 인형부터 MP3 플레이어, 운동화까지 앨범의 외형이 다양해지면서 음악을 소장하는 방식도 달라지는 모습이다. 특히 QR코드와 NFC 기술을 활용한 플랫폼 앨범이 확산되면서 실물 음반 시장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르세라핌 미니 카메라 앨범, 쏘스뮤직 제공]
CD를 대체하는 새로운 앨범의 등장
과거 K팝 앨범은 CD와 포토북, 포토카드 등으로 구성된 실물 음반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CD 자체를 재생하기보다 앨범에 포함된 구성품을 소장하는 데 구매 목적을 두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이에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기존 음반의 틀에서 벗어나 실용성과 소장 가치를 결합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형태가 플랫폼 앨범이다. 플랫폼 앨범은 실물 CD 대신 QR코드나 NFC 등의 기술을 활용해 음악과 관련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도록 제작한 음반이다. 별도의 CD 플레이어 없이도 스마트폰 등으로 음악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다양한 굿즈를 결합하면서 상품의 형태까지 확장되고 있다.
NCT WISH는 캐릭터 '위츄'를 활용한 키링 형태의 앨범을 비롯해 카메라 모양 키링과 가방 등 다양한 상품을 선보였다. 아티스트의 캐릭터를 앨범에 접목해 음악 콘텐츠와 소장품의 성격을 동시에 살린 사례다. 에스파는 정규 1집 'Armageddon'의 특별 버전에 CD 플레이어와 유선 이어폰을 포함했으며, 엔믹스는 미니 4집 'Fe3O4: FORWARD'에 16GB MP3 플레이어를 결합한 앨범을 출시했다.
최근에는 상품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있다. 아이브는 멤버들을 본뜬 봉제인형 형태의 상품을, 플레이브는 멤버별 캐릭터 피규어를 앨범과 연결했다. 에이티즈는 이어폰 참에 NFC 기능을 결합한 상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음악을 감상하는 기능에 그치지 않고 팬들이 일상에서 직접 사용하거나 소지할 수 있는 물건으로 앨범의 개념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 앨범 확산에 힘입은 음반 시장 반등
이러한 변화는 실제 음반 시장의 판매 지표에서도 나타난다. 써클차트가 발표한 '2023~2026 실물 앨범 포맷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2026년 1월부터 9월까지 써클차트 앨범 차트 톱 400 기준 누적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760만 장 증가했다. 4분기 판매 실적에 따라 올해 연간 판매량이 3년 만에 다시 1억 장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써클차트 톱 400 기준 연간 앨범 판매량은 2023년 1억1천577만 장을 기록했지만, 2024년에는 9천328만 장, 2025년에는 8천638만 장으로 감소했다. 침체를 겪던 시장이 올해 주요 아티스트들의 컴백과 다양한 앨범 포맷의 등장에 힘입어 반등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특히 플랫폼 앨범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써클차트에 따르면 전체 앨범 판매량에서 플랫폼 앨범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11.3%에서 2026년 9월 기준 17.8%로 6.5%포인트 상승했다. 연간 판매량 역시 2023년 1천300만 장에서 2025년 1천580만 장으로 증가했다.
판매량뿐 아니라 상품의 경제적 가치도 주목받고 있다. 플랫폼 앨범의 평균 출고가는 2023년 8천740원에서 2026년 9월 누적 기준 1만1천305원으로 29.3% 상승했다. 이는 플랫폼 앨범이 기존 CD를 대체하는 새로운 감상 수단을 넘어, 상품 자체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담는 상품 기획
플랫폼 앨범의 경쟁력은 단순히 독특한 외형에만 있지 않다. 아티스트의 음악과 세계관, 앨범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상품에 반영하면서 팬들이 음악을 보다 입체적으로 경험하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다.
엔믹스의 MP3 플레이어 앨범은 미니 4집 'Fe3O4: FORWARD'가 담고 있는 연대와 화합의 메시지를 음악을 함께 듣는 경험으로 구현한 사례다. 앨범의 출항이라는 서사에 맞춰 조개 모형을 외형으로 채택했으며, 제조사와 디자인·색상·기능 등을 조율해 제품을 제작했다.
NCT JNJM은 컨버스 운동화와 NFC 기술을 결합한 앨범을 선보였다. 두 멤버가 만나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한다는 의미를 신발이라는 형태에 담았다. 아일릿 역시 미니 4집 'MAMIHLAPINATAPAI'에서 수록곡 'GRWM'의 준비하는 순간이라는 메시지를 괄사 세라믹 오브제에 반영했다.
이처럼 상품 기획은 앨범의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수준을 넘어 음악과 팬의 일상을 연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팬들은 음악을 감상하는 것 외에도 아티스트의 정체성이 담긴 물건을 직접 사용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와 지속적으로 접점을 형성할 수 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은 코리아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굿즈가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팬과 아티스트 사이의 개인적인 유대감을 형성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는 상품의 차별성이 외형이나 희소성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장 가치를 넘어 지속 가능한 상품성으로
다만 새로운 형태의 앨범이 등장한다고 해서 모든 상품이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한정판이라는 희소성이나 팬덤의 구매력에만 의존할 경우 실제 사용 가치가 떨어지는 상품은 일회성 소비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전자기기나 생활용품을 결합한 앨범은 일반 음반보다 제품의 품질과 내구성, 사용 편의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상품의 완성도를 주요 과제로 보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전자기기나 실용 기능이 포함된 앨범의 경우 일반 인쇄물보다 샘플 검수를 반복하고, 작동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확인하는 등 품질 관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제품의 기능과 내구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추가되면서 기획과 제작에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SM엔터테인먼트 역시 머치 앨범이 소장품인 동시에 실제 사용하는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티스트의 이름이나 한정판이라는 이유만으로 상품의 가치를 확보하기보다 제품 자체의 완성도와 사용 경험을 충족해야 지속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실물 앨범 시장의 성장이 과잉 소비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동안 포토카드의 무작위 구성이나 팬사인회 응모 방식 등은 동일한 앨범을 반복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환경단체 케이팝포플래닛은 불필요한 음반 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을 줄여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플랫폼 앨범이 CD 사용을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새로운 굿즈를 수집하기 위한 반복 구매가 이어진다면 소비 구조 자체가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K팝 앨범 시장의 변화는 음반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현상을 넘어 음악을 소비하고 소장하는 방식이 재편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담은 차별화된 상품과 실질적인 사용 가치, 합리적인 소비 구조가 함께 마련돼야 새로운 시장의 성장세도 이어질 수 있다. 앨범이 더 이상 음악을 담는 매체에만 머물지 않는 가운데, K팝 업계가 상품성과 음악적 정체성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만들어 갈지 주목된다.


